강릉 학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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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탄생설화

    15세에 출가하여 829년(흥덕왕 4) 경주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김의종(金義宗)을 따라 당(唐)나라에 가 제안(濟安)에게 6년간 사사하였다. 844년(문성왕 6년) 탄압으로 승려를 도태하고 절을 파괴하는 법난(法難)을 만나 상산(商山)에 피신, 선정(禪定)하다가 847년(문성왕 9) 귀국, 백달산(白達山)에서 좌선하고 굴산사(崛山寺)에서 40년을 보내면서 경문(景文)·헌강(憲康)·정강(定康)의 3왕으로부터 왕사(王師)나 국사(國師)가 되어 주기를 권유 받았으나 응하지 않고 수도와 경연구에만 전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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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천우물

    석천우물은 재궁마을(현 학산2리)에 있는 우물로서 범일국사의 탄생설화가얽힌 우물이다. 설화에 의하면 옛날 마을의 양가집 처녀가 이곳 우물에 물을 길러와 바가지에 해가 담긴 물을 마시고 범일국사를 잉태하였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지난 2002년 태풍 ‘루사’의 피해로 석천우물의 본래 모습은 사라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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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바위

    이 학바위 역시 범일국사의 탄생설화가 얽혀있는 바위이다.
    옛날 이 마을에 사는 처녀가 햇빛에 비 친 우물물을 마시고, 아이를 잉태해 아기를 낳자 처녀가 아비없는 아이를 낳은 데 대한 마을 사람들의 불온한 질문과 비난이 쏟아졌다. 결국 부모의 강요로 이 아이를 뒷산에 있는 바위틈에 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자 그녀는 아이가 보고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나 부모는 그녀가 가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렇게 사나흘이 지났다. 갓난 아이는 호랑이한테 물려가지 않았더라도 이 추운 날씨에 살아있을 가망은 없었다. 닷새째가 되는 날, 부모의 감시에서 간신히 벗어난 그녀는 정신없이 마을 뒷산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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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굴산사지

    강릉 굴산사지는 행정구역상 학산2리 윗골마을의 마을회관 일대로 추정되는 지역으로 동쪽으로 흘러내리는 학산천을 사이에 두고 좌우의 평탄한 대지에 사찰관계 유적이 분포하고 있다.
    굴산사는 신라 문성왕 13년(851)에 범일국사(梵日國師, 810∼889)가 창건한 사찰로, 우리나라 9 산선문(九山禪門) 중의 하나인 사굴산문의 중심 사찰이었다. 굴산사는 고려시대에는 지방호족들의 지원하에 번성한 후 조선초 이후의 문헌에는 등장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조선초 이후에는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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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간지주

    당간지주(幢竿支柱)는 깃대(幢竿)를 고정하기 위해 사찰의 입구나 뜰에 세우는 두개의 돌기둥이다. 깃대에는 사찰의 행사 및 의식이 있을 때나 부처나 보살의 공덕을 기릴 때 깃발을 매단다. 이 당간지주는 깃대는 없어지고 지주만 남아 있으며, 굴산사 터에서 좀 떨어진 남쪽 언덕 벌판에 세워져 있다. 두 지주는 높이 5.4m이며, 서로 1m 사이를 두고 마주 서 있고 거대한 석재(石材)로 만들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규모가 가장 큰 편에 속한다. 지주의 정상 부근에 이르러서는 안팎 양쪽에서 차츰 둥글게 깎아 곡선을 이루고 있으며, 정상은 뾰족한 형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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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도

    이 부도는 굴산사를 세운 범일국사(梵日國師)의 사리를 모신 탑으로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굴산사터의 위쪽에 자리잡고 있으며, 모든 부재가 8각을 기본으로 하여 조성되고 있지만 부분적으로는 변형된 수법을 보인다. 사리를 모시는 몸돌을 중심으로 아래로는 받침부분이 놓이고, 위로는 지붕돌과 꼭대기장식이 놓였 다. 꼭대기장식으로는 상륜받침과 보개(寶蓋), 연꽃봉오리 모양의 구슬장식이 놓여 있다. 한 돌로 된 바닥돌은 8각의 평면이며, 위에는 접시 모양의 받침돌이 있다. 2단으로 된 8각의 임돌이 있는 아래받침돌은, 평면이 원형이며 구름무늬가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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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불좌상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邱井面) 굴산사지(窟山寺址)의 서남쪽에 있는 이 불상은 고려시대에 만들어 진 석불좌상이다. 얼굴의 마모가 심한데다가 몸 전체에 균열이 있고, 특히 하반신이 많이 파손되어 있어, 전체 모습을 파악하기는 어렵다. 손 역시 정확히 알기 어려우나 두 손을 가슴까지 올려 왼손을 약간 아래로,오른 손은 약간 위로 하고 있는 모양으로 미루어 지권인(智拳印)의 손모양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손모양은 진리를 상징하는 비로자나부상이 갖는모습이다. 머리에는 마치 소라와 같은 머리카락이 굵직굵직하게 표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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