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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일 2020-06-21 08:39:58 글쓴이 백충기 조회수 76

    <세계 3대 성모발현 성지(聖母發顯 聖地)>

    <1> 멕시코 과달루페(Guadalupe) 성모님
     
     테페약 언덕에서 본 구성당과 시내        새로 지은 성당                청록색 망토의 성모님


    다운타운에서 미니버스로 1시간 정도 북쪽으로 가면 시경계선 부근에 ‘과달루페의 성모’로 유명한 과달루페 성당이 있는데 이 성당 뒤편 테페약 언덕이 성모님이 발현하신 곳이다.
    1531년 12월 9일, 미사를 보러가던 원주민인 인디오 ‘후안 디에고(Juan Diego/57세)’는 테페약 언덕에서 청록색 망토를 걸친 성모님을 만난다. 성모님은 인디언 부족어로 나는 ‘과달루페의 성모’라 불리기를 원한다.고 하시며 ‘어려울 때에 정성을 다해 나를 찾는 이들에게 나의 사랑, 자비, 도움과 보호를 드러내도록 내가 지금 있는 이 자리 테페약 언덕에 성당을 짓도록 하여라.’라고 말씀하신다.
    과달루페는 아즈텍(Aztec) 인디오 언어의 한가지인 나후탈어로 ‘뱀의 머리를 짓밟는 분’이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테 콰틀라소페우(Te Coatlaxopeuh)’가 ‘테 과틀라소페우(Te Quatlaxopeuh)’로 되었다가 영어로 번역하면서 ‘과달루페(Guadalupe)’가 되었다고 한다.
    당시 멕시코 인디오들은 세 가지 모양의 뱀의 형상과 조각들을 숭배하고 온갖 잡신들을 섬겼으며 그 신들에게 살아있는 사람을 제물로 바치고 있었다. 사실 성모님은 인디언들을 위해 뱀을 짓밟으셨던 것이다.
    디에고는 주교관으로 달려가 성모님의 이야기를 전하지만 스페인 주교 ‘후안 데 수마라’는 미심쩍어하며 증거를 가지고 올 것을 명한다.
    다시 테페약 언덕으로 간 디에고는 성모님을 만나 그 말을 전했고 성모님은 처음 만났던 언덕위에 가서 피어있는 장미꽃을 주워오라고 한다. 바위투성이의 산일뿐더러 겨울철로 장미가 피는 계절이 아니었지만 언덕위에는 장미꽃이 만발하여 있었다. 꽃을 주워 내려오자 성모님은 디에고가 펼쳐놓은 틸마(Tilma/멕시코인들의 망토/거친 선인장 줄기로 짠 천)위에 가지런히 장미를 놓아주며 가는 도중에 절대로 펼쳐보지 말라고 한다.
    디에고가 주교님 앞에 가서 틸마를 펼치자 멕시코에서는 자라지 않는 주교의 고향인 스페인 카스티야산 장미 꽃송이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며 꽃을 쌌던 디에고의 틸마에 성모님의 모습이 새겨져 나타나는 기적이 일어난다. 틸마에 새겨진 성모님은 키가 1m 45cm에 피부색은 인디오처럼 거무스름한 황갈색이고 머리카락은 검은색이며 머리에서 발아래까지 길게 내려온 청록색 밝은 망토를 입은 모습이었다.
    1754년 교황 베네딕토 14세는 ‘과달루페의 성모(Our Lady of Guadalupe 혹은 Virgin of Guadalupe)를 북아메리카 수호성인으로 선포하면서 화해의 모후, 희망의 모후, 위로의 모후, 토착화의 모후, 사랑과 자비의 모후로 선포하였다. 과달루페 성모님 축일은 12월 12일이다.
    무자비한 스페인 식민통치의 고통에서 구원해 주시려고 발현하신 성모님은 수많은 멕시코 인디오들을 가톨릭으로 개종시켰고, 멕시코 인디오들은 식민통치의 고통을 위로 받았는데 다른 면으로 생각해 보면 스페인은 식민통치의 한 수단으로 이용하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달루페 성모님’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스페인을 몰아내는 멕시코 독립운동은 물론, 멕시코혁명 때에도 민중의 커다란 구심점과 힘이 되었는데 성모님이 새겨진 휘장을 높이 받들고 성모님이 새겨진 모자를 쓰고 독립투쟁과 혁명에 나서서 수많은 군중들의 지지를 얻고 힘이 되었던 것이다.
    매년 수십만 명의 순례자들이 찾아오는 이곳은 성모님이 발현하셨던 테페약 언덕위에 자그마한 성당이, 그 아래 광장에는 1709년 다시 세워진 아름답고 웅장한 바로크식 성당건물(Old Basilica)이 있는데 지반침하로 붕괴의 위험이 있어 현재는 박물관과 공연장 등으로 사용되고 바로 옆에 조개껍질을 엎어놓은 형상의 엄청난 규모의 새성당(New Basilica)을 지어 미사를 봉헌한다. 디에고의 틸마에 새겨진 성모화(聖母畵) 원본도 이곳에 모셔져 있다. 
    테페약 언덕을 오르는 아름다운 석조계단은 꽃과 장미로 뒤덮인 언덕 모습과 어울려 환상적이었고 옆쪽 절벽 아래쪽에는 디에고가 성모님을 만나는 모습의 조각이, 또 조금 떨어져 디에고가 주교님 앞에서 틸마를 펼쳐 보이는 모습이 동상으로 세워져 있다. 테페약 언덕 위에서 내려다본 성당의 모습은 정말 그림 같이 아름다워서 가슴가득 감동을 주었다.
    <틸마에 그려진 성화>
    1979년, 미국의 과학자들은 적외선을 이용하여 틸마(Tilma)에 새겨진 성모님 모습을 면밀히 조사한 적이 있는데, 이 때 성모님의 눈을 우주광학기술로 2.500배 확대하여 보았더니 성모님 눈의 홍채(紅彩)와 동공(瞳孔)에 장미꽃을 쌌던 틸마를 펼치는 순간과 거기에 함께 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나타나 보였다고 한다.
    과학자들은 더욱더 신중히 조사를 하고 내린 결론은 “인간의 손으로 그린 그림이 아니다. 성모의 눈은 즉석 카메라 처럼 눈앞에 비친 순간의 형상을 그대로 포착하였다.” 라는 결론을 내리고 조사를 중단했다고 한다. 또, 이 그림은 붓질을 한 흔적이 전혀 없으며 사용된 물감도 지구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염료로 거친 천임에도 안으로 전혀 배어들지도 않았고 오늘날까지 색이 바래거나 변질도 없었으며 식물성도, 동물성도 아닌 전혀 새로운 물질로 현대 과학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성모님 눈동자에 나타난 사람들        틸마를 펼치자 장미꽃이..          테페약 언덕    


    <2> 프랑스 루르드(Lourdes) 성모님
      
                    루르드 성당                     루르드 성모님              마사비엘 동굴


    프랑스 남부 툴루즈(Toulouse) 남서쪽 피레네(Pyrenees) 산맥 기슭에 있는 작은 도시 루르드(Lourdes)는  급류를 이루는 강의 양안에 발전된 도시로, 중세에는 성채와 함께 요새였다.
    백년전쟁 중 프랑스가 18개월에 걸친 포위공격 끝에 1406년 잉글랜드령(領)이던 이곳을 되찾았는데 강안에 세워진 중세시대 성은 루이 14세(1643~1715)가 등극한 때부터 19세기 초반까지 국사범의 감옥으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1858년 2월부터 7월 사이, 이 지역에 살던 가난한 제분업자의 딸이던 베르나데트 수비루(Bernadette Soubirous)라는 14세의 소녀는 근처 가브드포(Gave de Pau) 강안의 마사비엘(Massabielle) 동굴에서 성모님의 환영(幻影)을 18차례나 목격하였다고 한다. 흰옷에 하얀 베일과 파란 색 허리띠를 두르고 양발 위에는 노란 장미가 있는 모습으로 발현하신 성모님은 자신을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로 표현하며 ‘회개하시오, 죄인을 위하여 기도하시오’라는 메시지를 남겼다고 한다.
    성모님이 발현하신 그 동굴의 지하 샘물은 불치병에 기적적인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초기에 칠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 샘물을 마시고 몸을 씻은 뒤 병이 나았는데 교황청은 자세히 조사를 마친 후 이 가운데 67건을 기적으로 인정했다.
     1862년, 교황청은 수비루에게 나타난 그 환영은 성모님의 발현이 확실하다고 선포하여 '루르드의 성모'로 공인하였으며 지하샘물도 불치병에 기적적인 효과가 있는 것으로 선포하였다.
    그 이후, 루르드는 기독교인들의 순례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환자나 불구자 5만여 명을 포함하여 거의 매년 300만 명이 넘는 순례자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고 한다. 1876년 동굴 위에 세워진 교회는 너무 많은 순례자들로 비좁게 되자 1958년, 2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지하교회를 세웠다.
    베르나데타 수비루(Bernadette Soubirous<프랑스>/Sancta Bernadetta<라틴>/1844. 1. 7.~1879. 4. 16.)는 1879년 35세의 젊은 나이에 선종했는데 그녀의 시신은 지금까지 조금도 부패하지 않은 채 생전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1925년 6월 14일, 교황청에서는 그녀를 복녀품(福女品)에 올렸으며, 1933년 12월 8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대축일에 교황 비오 11세(Pio XI)에 의해 성녀(聖女)로 시성되었고, 축일은 4월 16일이다.


    <3> 포르투갈 파티마(Fatima) 성모님
     
    왕관을 쓴 모습으로 발현하신 파티마 성모님/  파티마 대성당/ 히야친타, 루치아, 프란치스코


    가난한 포르투갈 시골 동네 파티마의 젊은 농부의 자녀들인 7살의 히야친타(Hyacintha), 9살의 프란치스코(Francisco)와 10살의 루치아(Lucia)는 1917년 5월 13일부터 그 이후 10월 13일까지 인근의 이레네(Irene) 골짜기에서 자신을 ‘로사리오의 성모’라고 밝힌 한 여인을 매달 만났는데 총 6번을 만났다고 한다. 히야친타와 프란치스코는 친 남매간이고 루치아는 사촌이었다. 3번째로 성모 마리아를 만난 뒤 아이들은 자신들의 말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직접 성모님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다음 달 10월 13일, 아이들의 말을 확인하려고 신문기자와 7만여 명의 군중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날씨는 시커먼 구름이 온통 뒤덮이고 비가 억수같이 퍼부었는데 오후 1시경, 갑자기 비가 그치고 먹구름들이 물러갔으며 태양이 구름을 뚫고 나와 묘한 은빛 원반처럼 회전하기 시작하였다.
    루치아가 군중을 향해 태양을 보라고 크게 소리치자 하늘에는 여러 사람의 형상이 나타났고, 태양이 하늘에서 춤을 추는 것처럼 보였으며, 또한 태양이 하늘에 있는 원래의 위치로 되돌아가기 전에 지상으로 떨어지는 것처럼 느꼈다고 한다. 이 현상은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수십 km 떨어진 인근 마을의 주민들도 모두 목격하였다. 훗날 수녀가 된 루치아는 성모님과의 만남을 이렇게 회고하였다.
    『지금까지 어느 곳에서도 본 적이 없는 매우 아름다운 부인이었다. 그 부인이 입은 옷은 반짝거리는 물이 채워진 수정 유리보다 더 강하고 밝은 빛을 쏟아내는 찬란한 것이었다. 부인이 입은 옷은 발밑에까지 늘어뜨려졌으며 별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나이는 열여섯 살 정도로 보였고, 표현할 수 없이 아름다운 천상의 용모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인지 생각에 잠긴 듯한 슬픔도 비치고 있었다. 가늘고 섬세한 부인의 손은 진주 같은 것으로 엮어진 묵주를 들고서 가슴 부분에서 서로 맞잡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모님의 모습이나 말씀을 들을 수 없었고 오직 세 어린이들에게만 보이고 들렸다.
    처음에는 이 주장을 사실로 인정하지 않았던 주교님도 1930년 10월 13일 세 어린이의 환영을 성모 마리아의 출현으로 공식 승인했고 같은 해에 교황은 파티마 순례자들에게 면상(免償)을 주었다.
    파티마가 성모발현의 성지로 알려진 후 전국적인 규모의 파티마 성지순례는 1927년에 처음 이루어졌다. 1928년에 바실리카(Basilica/성전)가 건축되기 시작하여 1953년에 봉헌식이 거행되었다. 65m 높이의 탑 위에 거대한 청동 왕관과 수정 십자가가 있으며, 성당의 양쪽에는 병원과 피정의 집이 있고 정면에는 광장이 있는데 한쪽에 자그마한 성모 발현 기념성당이 있다. 이 파티마 성모발현 성지는 기적적인 치유의 은총이 많이 보고되었지만 공식적으로 발표된 것은 없다고 한다.
    1967년 5월 13일, 성모님 첫 출현 후 50주년 기념일에는 100만 명으로 추산되는 군중들이 교황 파울루스 6세가 평화를 기원하며 집전한 미사에 참여하기 위해 운집했다고 한다. 2007년에는 파티마에 신자들이 너무 많이 몰려들어 광장 앞에 추가로 성당을 지었는데 8,500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하며 공사비는 모두 순례자의 헌금으로 충당되었다고 한다.
    파티마(Fatima) 성모님이 남기신 메시지는 ‘세계 평화를 위하여 매일 묵주기도를’ 이었고 세 가지 비밀을 알려주는데 첫째가 지옥의 환시, 둘째가 티 없으신 성모마리아의 성심, 셋째가 교황의 고통으로 수녀가 되어 2005년 97세로 선종한 루치아 수녀가 기록으로 남겼고 교황청에서 발표하여 알려지게 되었다.
    루치아의 사촌이었던 히야친타는 10살(1920), 오빠였던 프란치스코는 11살(1919)에 사망했다.
    순교하지 않고 어린나이로 유일하게 사후 성인, 성녀품에 오른 히야신타와 프란치스코는 2000년 교황 바오로 2세에 의하여 시복되었으며 축일은 2월 20일이다.
    시성식을 하기 위하여 히야친타와 프란치스코의 관을 열었을 때 히야친타는 살아있는 모습처럼 온전하게, 프란치스코는 뼈만 있었는데 성모님이 발현하셨을 때 세 명 중 프란치스코만 성모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고 한다. 루치아, 히야신타, 프란치스코의 관(棺)은 파티마 성모발현 파티마 성당 안에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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